『대한제국 칙령 제41호』제2조에 명시한 죽도(대섬)와 석도(돌섬)는?

○ 1694년,『울릉도사적』 中

((중략))

(중략)

南岸無船泊處東南間洞口內止宿
(울릉도의) 남쪽 연안에는 정박할 곳이 없어 동남쪽의 칸(間)에 있는 동구(洞口) 안에 지숙(止宿)하였다.

(중략)

南濱海邊有篁竹田土處是遣東方五里許有一小島不甚高大
(동남칸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오는 물가의 해변에는 황죽전토(篁竹田土)인 곳이 있고 동쪽으로 5리 정도에는 작은 섬이 있는데 그다지 높지도 크지도 않다.

海長竹蕞(자로 판독, 검증요망)生於一面
어떤 면(一面)의 대나무가 더부룩하게 자라는 곳에서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霽雨霭(자로 판독, 검증요망)捲之日入山登中峯則南北兩峯岌崇相面此所謂三峯也
비가 그치고 해무(海霧)가 걷힌 날, 산에 들어 중봉에 올랐다. 곧, 남쪽과 북쪽에 두개의 봉우리가 서로 맞대어 급숭(岌崇)하니 이것은 소위 삼봉이다.

西望大關嶺逶迤之狀東望海中有一島杳在辰方而其大未滿蔚島三分之一不過三百餘里
서쪽으로는 대관령의 위이(逶迤)한 모습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해중에 하나의 섬이 보이는데 진방(辰方) 멀리에 있다. 그 크기는 울도(蔚島)의 3분의 1 미만이고 불과 300여리 남짓이다.

(중략)

船泊處則東南間口僅容四五隻之處而東南岸則亦非可藏處是遣

(중략)

西方大谷溪澗成川沿邊開豁此處爲最而所泊處船隻可避東南風而西風難避無非在前泊船之所

(중략)

北邊岸上有轆轤亦非我國所造

島中崗巒重疊而山腰以上則皆是石角以下則土山而山勢險洞壑深邃

((중략))

東南崖岸漂散最多竹田東南麓三處最多

而每處可落皮牟三十餘石

且兩田斫竹尤多其傍斫置數千竿

而或有陳枯者或有未幹者

東南間從谷中向竹田十五里許有小路處此必取竹者徃來逕

(중략)

○ 1711년,『울릉도도형』

『울릉도도형』 부기

辛卯五月十四日
(1711년) 신묘 5월 14일

自倭舡倉移舟待風所拙書一句以標
왜선창에서 대풍소로 배를 옮기고 표지(標識)를 하기위해 일구(一句)를 졸서(拙書)했다.

日後刻木立於卯方岩上
며칠후에는 (일구를) 나무에 새겨 (울릉도의) 묘방에 있는 암(岩) 위에 세웠다.

(중략)

Cf. 「울릉도 도동리 신묘명 각석문」 中

辛卯五月初九日到泊于倭舡倉
(1711년) 신묘 5월 초 9일 왜선창에 도착해 정박하였다.

(중략)

朴錫昌拙句刻石于卯方
박석창, (울릉도) 묘방(卯方)에 졸구(拙句)를 각석(刻石)하다.

(중략)

『울릉도도형』 동쪽 확대

※ 지도의 동쪽 우산도에는 ‘海長竹田所謂于山島’라는 부기가 있는데, 박석창이 나무에 새겨 묘방의 암상에 세운 표의 내용으로 추정!/? 묘방(卯方)의 암(岩)은 현재의 독도로 추정!/?

그 의미는 ‘(울릉도의) 죽전(竹田)이 있는 곳에서 바다로 나아가면 이른바 우산도 이다’라는 의미 인 듯!/?
(‘海長’은 ‘바다로 나아가다’로 해석)

죽전(竹田)이라고 표기된 곳 아래에 ‘舡泊所倭舡艙人民可居處’라고 부기하고 있다.

Cf. 『鰈域全圖(접역전도)』(울릉도 확대)
울릉도 동쪽 우도(于島) 표기.

Cf. 『我國摠圖(아국총도)』(울릉도 확대)
울릉도 동쪽 우도(于島) 표기.

Cf. 『울릉도도형1』
후죽암(帿竹巖), 대우도(大于島), 소우도(小于島) 표기.

동쪽 확대
죽전(竹田), 묘방(卯方) 표기

Cf.『울릉도도형2』
후죽암(帿竹巖), 대우도(大于島), 소우도(小于島) 표기.

동쪽 확대
묘방(卯方) 표기

Cf. 1882년, 『울릉도외도』
인방(寅方), 간방(艮方) 확대

죽도(竹島)는 인방(寅方)에 도항(島項)은 간방(艮方)에 표기

Cf. 1711년,『울릉도도형』
인방(寅方), 간방(艮方) 확대

석봉(石峯) 표기

Cf. 『매월당시집』(권 12 遊金鰲錄)
망우릉도(望羽陵島)

玄洲蓬島飽曾聞。思欲仙遊謝世氛。
人說羽陵堪避隱。登高試望渺如雲。

海岸有石峯高聳而頂平上有白沙
萬年松纏繞峯腰。石罅。異草敷榮。海棠爛開。亦一佳境也。賞翫久之。因宿其上。

Cf. 『울릉도도형1』
인방(寅方), 간방(艮方) 확대

龍巖(농암 ; ‘언덕바위’로 해독) 표기.

Cf. 『울릉도도형2』
인방(寅方), 간방(艮方) 확대

龍巖(농암 ; ‘언덕바위’로 해독) 표기.

※ 3개의『울릉도도형』에는 현재의 독도를 묘방(卯方)에 우산도(于山島),  대우도(大于島)와 소우도(小于島)로 표기하고, 현재의 관음도와 죽도는 인방(寅方)과 간방(艮方)에 2개의 석봉(石峯), 2개의 龍巖(농암 ; ‘언덕바위’로 해독)으로 표기하고 있다!/?

Cf. 1711년,『울릉도도형』
진방(辰方) 확대

※ 표시된 섬은 울도에 부속한 섬이 아니라 진방(辰方) 한계에 위치한 오키노시마(隠岐島) 일대로 추정(검증요망)

Cf. 1711년,『울릉도도형』
오방(午方) 확대

※ 표시된 섬은 울도에 부속한 섬이 아니라 오방(午方) 한계에 위치한 이키노시마(壱岐島) 일대로 추정(검증요망)

Cf. 1711년,『울릉도도형』
미방(未方) 확대.

※ 표시된 섬은 울도에 부속한 섬이 아니라 미방(未方) 한계에 위치한 쓰시마(對馬島) 일대로 추정(검증요망)

Ex.『탐라순력도』(한라장촉)
제주도 서귀포 남쪽 남방한계

○ 1786년,『일성록(日省錄)』정조 10년 6월 4일(병자)
原春監司李致中以鬱陵島搜討形止馳聞 中

(중략)

二十九日解纜到苧田洞
(4월)29일 출항하여 저전동에 도착하였다.

四船之人沐浴山祭後看審則自洞口至中峯二十餘里

(중략)

而洞裏石城痕周可數三里宛然猶存

城內有大錐巖小錐巖石礎苧田等處

土地平衍可墾田畓八九石落

cf.『해동여지도』저전동(楮田洞) 표기

cf. 『청구도』저전동(楮田洞) 표기

cf. 『동여도』저전동(楮田洞) 표기

cf. 『울릉도외도』

cf. 『해동지도』(울릉도)

※ 저전동은 현재의 저동이 아니라 현재의 추산항 부근 송곳바위와 나리분지가 있는 곳으로 추정,『울릉도외도』의 북쪽 왜선창(倭船滄)부근으로 추정.

前進可支仇味則山腰有兩石窟其深難測
(저전동에서) 가지구미(可支仇味)로 (배를타고) 앞으로 나아가니 곧, 산허리에 2개의 석굴있었는데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 가지구미는 가지도의 구미로 현재의 죽도로 추정, 동쪽면 해식동굴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 시간적으로나 진행방향상 독도라 할 수 없음

可支魚驚出投水之際砲手齊放捉得二首

五月初一日卯時
5월 초 1일 묘시

轉向南邊倭船滄
(가지구미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해안가의 왜선창(倭船滄)으로 향하였다.

則自洞口至中峯三十餘里皆是殘山

石城石塔石葬等遺址宛然

轉向前面巖壁削列水邊

cf. 『울릉도도형』

cf. 『해동지도』(울릉도)

到長作地竹林處則竹林稀疏
(왜선창에서) 장작지 죽림(竹林)에 도착해 죽림(竹林)이 희소(稀疏)한 곳에 곧바로 머물렀다.

初二日平明
초 2일 수평선이 밝아 올때

看審則有巖屹立水中
(장작지에서) 수중에 바위가 흘립(屹立)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狀如牛角名以帿竹巖
모양은 쇠뿔모양과 같고 이름은 후죽암으로 불린다.

束有防牌島大島爲三里許
대도(大島 ; 대섬)와 떨어져 있는 방패도도 속해 있는데 (대도에서 방패도는) 3리정도가 된다.

(중략)

※ 장작지, 현재의 사동해안에서 수중(水中)쪽이면 동쪽을 의미하는데 동쪽을 바라보며 간심(看審)했을 뿐 간것은 아님, 현재의 사동 해안 앞에는 후죽암으로 불릴만한 바위와 방패도, 대도로 불릴만한 섬은 존재하지 않음. 아주 멀리 있는 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

○ 1794년, 『일성록(日省錄)』정조 18년 6월 3일(무오)
江原監司沈晉賢以鬱陵島搜討後圖形馳啓 中

(중략)

二十五日

到長作地浦
(통구미진에서) 장작지포에 도착했다.

(중략)

前有三島在北曰防牌島在中曰竹島在東曰甕島
(장작지포에서 배를 타고) 나아가면 섬이 세개가 있는데 북쪽에 있는 것은 방패도로, 중간에 있는 것은 죽도로, 동쪽에 있는 것은 옹도로 일컬어 진다.

※ 장작지포, 현재의 사동 해안 앞에는 방패도, 죽도, 옹도로 불릴만한 섬은 존재하지 않음. ‘前’자의 의미는 ‘앞’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본의로써 ‘배를 타고 나아가다’로 해석.

三島相距不過百餘步
세개의 섬은 서로서로 불과 백여보 떨어져 있다.

難以登覽仍爲止宿
나아가 둘러보기 어려울거 같아 (장작지포에서) 지숙(止宿)하였다.

二十六日

轉向可支島
(장작지포에서) 가지도로 방향을 바꾸어 향하였다.

四五箇可支魚驚駭躍出形若水牛砲手齊放捉得二首

而丘尾津山形最爲奇異入谷數里則昔日人家遺址宛然尙存
그리고 구미진(丘尾津) 산허리의 형세가 가장 기이하였는데 입곡(入谷)이 수리(數里)는 되는 듯 하였다 …

左右山谷甚爲幽深難於登涉仍爲下來遍看竹巖帿布巖孔巖錐山等諸處
좌우의 산곡(山谷)은 매우 유심(幽深)하였고 오르는 것이 어려워 오르다 말고 내려와 죽암, 후포암, 공암, 추산 등 모든 곳을 편간(遍看)하였다.

※ 입곡, 좌우산곡은 현재의 죽도 동쪽면 해식동굴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가지도에 오르다 말고 둘러본 곳은 현재의 추산항 일대로 추정. 시간적으로나 방향진행상 가지도는 독도가 아님.

(중략)

cf. 『울릉도도형』

cf. 『해동지도』(울릉도)

cf. 『울릉도외도』

○ 1794년『정조실록(正祖實錄)』정조 18년 6월 3일(무오)
江原道觀察使沈晋賢狀啓言 中

(중략)

二十五日

到長作地浦

(중략)

前有三島在北曰防牌島在中曰竹島在東曰瓮島

三島相距不過百餘步

難以登覽仍爲止宿

二十六日

轉向可支島

四五箇可支魚驚駭躍出形若水牛砲手齊放捉得二首

而丘尾津山形最爲奇異入谷數里則昔日人家遺址宛然尙存

左右山谷甚爲幽深難於登陟仍遍看竹巖帿布巖孔巖錐山等諸處

(중략)

※ 『일성록』의 기록과 동일하지만 『일성록』의 옹도(甕島)를 옹도(瓮島)로 기록하고 있음.

○ 1882년,『고종실록』 고종 19년 4월 7일(임술)
召見檢察使李奎遠辭陛也 中

敎曰

鬱陵島近有他國人物之無常往來任自占便之弊云矣

且松竹島芋山島在於鬱陵島之傍而其相距遠近何如亦月何物與否未能詳知
또 송죽도와 우산도는 울릉도의 곁에 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무슨 물건이 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今番爾行特爲擇差者各別檢察且將設邑爲計必以圖形與別單詳細錄達也

奎遠曰
규원왈

芋山島卽鬱陵島而芋山古之國都名也
우산도는 곧 울릉도 뿐만 아니라 옛 우산국(芋山國)의 도명(都名)입니다.

松竹島卽一小島而與鬱陵島相距爲三數十里
송죽도(松竹島)는 곧 작은 섬으로 울릉도와 3리(三里) 또는 수십리(數十里) 떨어져 있는 섬입니다.

其所産卽檀香與簡竹云矣
그 곳에서는 단향과 간죽이 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敎曰
교왈

或稱芋山島或稱松竹島皆輿地勝覽所載也
우산도로 칭하는 곳은 어떠한지? 송죽도로 칭하는 곳은 어떠한지? 모두 (그 형편이) 여지승람에 소재되어 있는 곳 인지?

而又稱松島竹島與芋山島爲三島統稱鬱陵島矣
그리고 또 (일본인들이) 송도로 칭하는 죽도와 우산도를 (울릉도와 함께) 세개의 섬으로 삼아 울릉도에서 관할하는 곳으로 칭할 수 있는지?

其形便一體檢察
그 형편(땅의 생긴 現象)을 모두 검찰하라.

鬱陵島本以三陟營將越松萬戶輪回搜檢者而擧皆未免疎忽
울릉도는 본래 삼척영장과 월송만호가 차례로 돌아가며 수검(搜檢)하던 곳이지만 대부분 소홀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只以外面探來故致有此弊爾則必詳細察得也
단지 (울릉도) 외면만을 살피고 돌아온 까닭에 이러한 폐단이 있어 온 것이니 그대는 모범이 되어 반드시 상세하게 살펴 분명히 하라.

奎遠曰
규원왈

謹當深入檢察矣
자성하며 (울릉도) 깊은곳 까지 들어가 검찰할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或稱松島竹島在於鬱陵島之東
혹 (일본인들이) 송도(松島)로 칭하는 죽도(竹島)는 울릉도의 동쪽에 있습니다.

而此非松竹島以外別有松島竹島也
이에 (죽도는) 송죽도(松竹島)는 아니고 이외에 따로 있는 송도, (즉) 죽도(竹島)입니다.

Cf. 1696년 ‘죽도지회도’
독도를 송도(松島)로 표기

Cf. 1877년 ‘기죽도약도’
독도를 송도(松島)로 표기

敎曰
교왈

或有所得聞於曾往搜檢人之說耶
혹 이전에 다녀온 수검인(搜檢人)의 설명을 들어 본적이 있느냐?

奎遠曰
규원왈

曾往搜檢之人未得逢著而轉聞其梗槪矣
이전에 다녀온 수검인(搜檢人)을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그 경개(梗槪)를 전문(轉聞)한 것을 보충하였을 뿐입니다.

○ 1882년, 『울릉도검찰일기』초 4일 中

원문참조(오탈자 확인 요망)

初四日

(중략)

攀登于東便上上峯峯名聖人不知幾萬層幾萬丈也

登第一層四望海中都無一点島嶼之見形矣

(중략)

○ 1882년, 『울릉도검찰일기』초 9일 中

원문참조(오탈자 확인 요망)

(중략)

其下有一小浦名曰船板邱尾

(중략)

南便洋中有二小島

形如臥牛而一爲右旋一爲左旋
各其一便則稚竹有叢一便則卉雑腐生高
爲数百丈廣爲数●之地長爲五六百歩

人云島項亦云竹島也

(중략)

○ 1882년, 『울릉도검찰일기(계초본)』
초 4일 中

(중략)

登東邊最高峯曰聖人峯四面聘眺海天茫●無一点島嶼

(중략)

○ 1882년, 『울릉도검찰일기(계초본)』
초 9일 中

(중략)

東南洋中有二小島
(선판구미의) 동쪽과 남쪽 바다에는 두개의 작은 섬이있다

(중략)

一云島項一云竹島
하나는 도항(현재의 관음도)으로, 하나는 (송)죽도(현재의 죽도)로 말한다

(중략)

○ 1882년, 『울릉도검찰일기 (계초본)』
6월 5일, 복명(復命) 中

(중략)

(자로 판독 ; 원문참조 탈자)松竹于山等島僑寓諸人皆以傍近小島当之然既無圖籍之可據又無郷導之指的
(일본인들이) 송도로 칭하는 죽도와 우산도 등의 섬은 교우(僑寓)하는 자들 모두가 방근(傍近)하는 작은 섬이라 도적(圖籍)의 가거(可據) 또는 향도(郷導)의 지적(指的)은 당연 이전부터 없었던것 같습니다.

晴明之日登高遠眺則千里可窮而更無一拳石一撮土
청명한 날에 높은 곳(東邊最高峯曰聖人峯)에 올라 멀리 바라보았지만 천리가 가궁(可窮)하였고 일권석 일촬토 하나 갱무(更無)하였습니다.

則于山之称鬱陵即如耽羅之称済州是白如乎
하지만 곧, 우산국에 속해 있는 것들(于山之)을 울릉(에 속해있는 것)으로 칭하는 것은 탐라국에 속해 있는 것들(耽羅之)을 제주(에 속해 있는 것으)로 칭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사룁니다.

(중략)

※ 이규원은 동쪽 최고봉인 성인봉에 올라 称松竹于山等島를 확인하려 하였지만 확인 못 함. 그러나 선판구미의 동쪽과 남쪽에 있는 현재의 관음도를 島項으로 현재의 죽도를 (松)竹島로 확인. 곧, (松)竹島와 称松竹于山等島의 竹島는 동일한 섬이 아님.

또한『고종실록』의 稱松島竹島與芋山島라는 질문에 이규원은 或稱松島竹島在於鬱陵島之東而此非松竹島以外別有松島竹島也라고 답하고 있어 (松)竹島와 稱松島竹島與芋山島의 竹島를 분명히 구별하고 있음.

○ 1899년 ,「황성신문(皇城新聞)」별보 9월 23일자
鬱陵島事況 中

蔚珍之東海에一島가有하니曰鬱陵이라
울진의 동쪽 바다에는 섬 하나가 있는데 울릉이라 한다.

其附屬한小六島中에最著者는于山島竹島ㅣ 니大韓地誌에曰鬱陵島는古于山國이라
그 부속한 소륙도 중에 (그 지명이) 가장 오래된 곳(最著者)은 우산도와 죽도이니 대한지지에 울릉도는 예전의 우산국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중략)

古에牛形無角한水獸가有하니名曰可之오海鳥가有하니名曰霍鳥ㅣ 러라
옛날에 우형무각(牛形無角)한 수수(水獸)가 있었던 곳은 가지라 명하여 불렀고, 해조(海鳥)가 있었던 곳은 곽조(霍鳥)라 명하여 불렀다 한다.

(중략)

○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고종 37년 10월 25일
제 2조

郡廳位寘는台霞洞으로定하고區域은鬱陵全島와竹島石島를管轄할事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와 석도를 관할할 사(事)

○ 1904년, 『조선개화사』지리편, 제 4장
울릉도 중

『조선개화사』첨부지도

(중략)

大小六島アリ其ノ中著名ナルヲ于山島(日本人ハ松島ト名ク)竹島ト云フ
크고 작은 6개의 섬이 있으며, 그 중 저명(著名)한 것을 우산도(일본인은 송도로 名한다)죽도라고 한다.

(중략)

Cf.『大東地志』江原道(號關東) 蔚珍 中

(중략)

島之南有四五小島島中皆石壁
(울릉)도의 남쪽에는 네 다섯개의 작은 섬이 있는데 섬의 중앙은 모두 석(암)벽이다.

(중략)
Cf. 『해동지도』울릉도
船泊可居 부기(附記)

Cf.『지승』 울릉도
舡泊可居 부기(附記)

Cf. 『강원도지도』울릉도

Cf. 『대동방여전도』울릉도

Cf. 『대동여지도』 울릉도

※ 울릉도의 남쪽 연안에는 실제적으로 섬이라고 불릴만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울릉도의 남방한계에 위치한 섬을 표시한 것으로  쓰시마(對馬島), 이키노시마(壱岐島), 오키노시마(隠岐島) 일대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검증요망).

Ex. 『탐라순력도』(한라장촉)
제주도 서귀포 남쪽 남방한계

※ 울릉도의 남쪽에 표시된 5개 혹은 3개의 섬은 울릉도의 남방한계에 위치한 섬을 표시한 것이고 울릉, 곧 우산국과 관련된 섬은 울릉도, 현재의 관음도, 현재의 죽도, 우산도 총 4개의 섬이 된다.

그런데 「황성신문」과 『조선개화사』에는 울릉, 곧 우산국(于山國)에 부속한 섬은 6개로 기술하고 있는데 …

여기에 울릉도 수토기 중 장작지포의 수중에 있는 방패도, 죽도, 옹도를 합치면 총 7개의 섬이 된다.

『고종실록』, 芋山島卽鬱陵島而芋山古之國都名也라는 기록의 ‘都名’ , 『울릉도검찰일기』, 登第一層四望海中都無一点島嶼之見形矣라는 기록의 ‘海中都’ 라는 문구에 ‘都’자를 쓰고 있는데 그 의미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

○ 1906년,「황성신문(皇城新聞)」 7월 13일자
鬱島郡의配置顛末 中

(중략)

答函되

(중략)

郡廳은台霞洞에在하고該郡所管島竹島石島오
(울도군의) 군청은 태하동에 위치하고 그 군(郡)이 소관(所管)하는 섬은 죽도(竹島)와 석도(石島)이고

東西가六十里오南北이四十里니
(울릉전도의 구역은) 동서(東西)가 60리(里)이고 남북(南北)이 40리(里)이니

合二百餘里라고하였다더라
(죽도와 석도의 구역은) 200여리(里)를 합(合)한 것이라고 하였다 더라.

※ 기사의 내용은『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 2조의 항목을 示明(시명 ; 一般에 널리 알리도록 仔細히 布告함)하기 위해 세부사항을 기고한 기사로
제 2조의 첫번째 울도군의 군청의 위치,
제 2조의 두번째 울릉전도(鬱陵全島)의 구역,
제 2조의 세번째 죽도(竹島)와 석도(石島)의 구역
을 상세화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곧 죽도와 석도는 하나의 관할 구역으로서 울릉도에서 200여리 떨어진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죽도와 석도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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