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강사

Daejeonggangsa(大靜講射)

*그림세부

대정강사

1. 摩蘿島(마라도) : 『신증동국여지승람』(대정)에는 ‘마라도(麽羅島)’라 했다. 『탐라지』(대정)에는 ‘마라도(摩蘿島), 『탐라순력도』(한라장촉), 『영주산대총도』 등에는 ‘마라도(摩蘿島)’, 『제주삼읍도총지도』에 ‘마라도(麻羅島)’, 『제주삼읍전도』에 ‘마라도(摩羅島)’, 『대동여지도』에 ‘마라(摩羅)’ 등으로 표기했다.

2. 盖波島(개파도) : 현재의 가파도(加波島) ; 『신증동국여지승람』(대정)과 『남사록』, 『지영록』 등에는 ‘개도(盖島)’라 했다. 『탐라지』에는 ‘개파도(盖波島)’, 『제주삼읍전도』에 ‘가파도(加波島)’, 『대동여지도』에 ‘개파(盖波)’, 『조선지형도』에 ‘가파도(加波島)’로 표기

3. 松岳山(송악산) : 『탐라지』에는 ‘송악(松岳)’이라 기록했다. 『해동지도』(제주삼현)에는 ‘송악산(松岳山)’, ‘저성봉(貯星烽)’으로 분리되어 표현했다. 『1872년지방지도』(대정)에도 ‘송악산(松岳山)’, ‘저별봉(貯別峰)’으로 구분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송악산(松岳山)’이라 표기되었다.

4. 貯星望(저성망) : 송악산 저별봉(貯別峰)에 있었던 망(望)

5. 摹瑟浦(모슬포) …

6. 文廟(문묘) …

7. 砇軍山岳(민군산악) :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에 위치한 측화산.『세종실록지리지』(대정)에 ‘구산(仇山)’,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굴산(屈山)’이라 표기하고 “아흔아홉골이 있다.”고 기재했다. 『탐라지』(대정)에 ‘호산(蠔山)’이라 기재했다. 『조선강역총도』에 ‘굴산(屈山)’, 『탐라순력도』(한라장촉)와 『탐라지도병서』에 ‘군산(軍山)’, 『해동지도』(제주삼현)에 ‘군산악(軍山岳)’, 『제주삼읍도총지도』, 『대동여지도』 등에 ‘호산(蠔山)’, 『조선지지자료』에는 ‘군산(群山)’, 『조선지형도』에는 ‘군산(軍山)’이라 표기했다. 이오름 일대에 골짜기가 많아 ‘골메’라고 한 것이 변음되어 ‘굴메’라 했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호산(蠔山)’, ‘굴산(屈山)’, ‘군산(軍山)’ 등이라 할 수 있다.

8. 山房(산방) :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측화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산방산(山房山)’이라 기재했고『탐라지』(대정)에 ‘산방(山房)’이라 표기, 『조선강역총도』에 ‘산방산(山房山)’이라 수록했고, 지금은 산방굴사로 불리는 ‘굴암(窟岩)’도 표기했다. 『영주산대총도』에는 ‘산방(山房)’이라 표기,『조선지형도』에도 ‘산방산(山房山)’이라 수록했다. ‘산방’은 산 중턱에 위치한 ‘산의 방’ 즉, 굴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9. 倉(창) …

10. 郎厅(낭청으로 판독, 검증요망) : 문관, 무관을 망라하는 종6품의 관직으로 조선 후기에 비변사-선혜청-준천사(濬川司)-오군영 등에 있었다. 원래는 낭관(郎官)과 같은 뜻으로 각 관서의 당하관(정3품 당하관)에 해당하는 관료들을 부르는 이름이었는데, 1555년(명종 10)에 비변사가 상설기구가 되면서 12인의 낭청을 두게 되었고, 이후 관직명이 되었다. 그 후에도 낭청은 특정한 품계를 고정시키지 않은 채 많이 설치하였다.

11. 鄕厅(향청) : 조선 시대 수령을 보좌하던 자문 기관. 조선 초기에 설치된 유향소(留鄕所)를 임진왜란 이후 대개 향청이라 불렀음.

12. 作厅(작청) : 아전이 집무하는 청사로서 길청(吉廳) 또는 연청(掾廳)이라고 함. 조선 시대의 아전은 실무를 담당한 중간 관리층으로서 실제적인 사무의 처리는 이들에게서 이루어졌으므로 이들이 모여있는 곳이 바로 업무가 이루어지는 곳이란 의미에서 작청이라 하였음.

13. 衙(아) …

14. 官厅(관청) …

15. 兄弟島(형제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관도(貫島)’라 표기, 『탐라지』(대정)에도 ‘관도(貫島)’라 했다. 『영주산대총도』에는 ‘형제암(兄弟岩)’이라 표기하고 두 섬으로 표현했다. 『해동지도』(제주삼현)에도 ‘형제암(兄弟岩)’이라 했다. 『1872년지방지도』(대정)에도 ‘형제암’이라 했는데, 섬은 하나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대동여지도』에는 ‘관(貫)’이라고 표시된 ‘관도’도 있고 ‘형제(兄弟)’라 표기된 ‘형제섬’도 있는 혼재된 모습이다. 『조선지형도(대정읍 마라도)에는 ‘형제암(兄弟巖)’이라 했다.
 

* 녹문(錄文) 세부

壬午十一月初十二日留(임오십일월십이일유)
1702(숙종28)년 십일월 십이일 머물며

都訓長前縣監文榮後(도훈장전현감문영후)
도 훈장은 전 현감 문영후

各面訓長五(각면훈장오)
각면의 훈장은 오(명)

各面敎射長五(각면교사장오)
각면의 교사장은 오(명)

講儒四十二人(강유사십이인)
강유(유학을 공부한사람)는 사십이명

射員二十一人(사원이십일인)
사원(활을 쏘기 위하여 사정(射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이십일명
 

*한자 이체자(異體字) 참고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