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칙령 제41호』제 2조에 명시한 ‘竹島(죽도 ; 대섬)’와 ‘石島(석도 ; 돌섬)’는 … ?

Part I

○ 1694년,『울릉도사적(鬱陵島事蹟)』 中

(중략)

南岸無船泊處東南間洞口內止宿
(울릉도의) 남쪽 연안에는 정박할 곳이 없어 동남칸(東南間),동구(洞口) 안에 지숙(止宿)하였다.

(중략)

南濱海邊有篁竹田土處是遣東方五里許有一小島不甚高大
(동남칸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오는 물가의 해변에는 황죽전토(篁竹田土)인 곳이 있고 동쪽으로 5리 정도에는 작은 섬이 있는데 그다지 높지도 크지도 않다.

海長竹叢生於一面
(동남칸) 한 편에 죽총(竹叢)이 자라는 곳에서 바다로 나아가려고

霽雨霭(자로 판독, 검증요망)捲之日入山登中峯則南北兩峯岌崇相面此所謂三峯也
비가 그치고 해무(海霧)가 걷힌 날, 산에 들어 중봉에 올랐다. 곧, 남쪽과 북쪽에 두개의 봉우리가 서로 맞대어 급숭(岌崇)하니 이것은 소위 삼봉이다.

西望大關嶺逶迤之狀東望海中有一島杳在辰方而其大未滿蔚島三分之一不過三百餘里
서쪽으로는 대관령의 위이(逶迤)한 모습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해중에 하나의 섬이 보이는데 진방(辰方) 멀리에 있다. 그 크기는 울도(蔚島)의 3분의 1 미만이고 불과 300여리 남짓이다.

(중략)

船泊處則東南間口僅容四五隻之處而東南岸則亦非可藏處是遣

(중략)

西方大谷溪澗成川沿邊開豁此處爲最而所泊處船隻可避東南風而西風難避無非在前泊船之所

(중략)

北邊岸上有轆轤亦非我國所造

島中崗巒重疊而山腰以上則皆是石角以下則土山而山勢險洞壑深邃
섬은 강만(崗巒)이 중첩되어 있고 산허리 (아래에서) 위로는 곧 석각(石角)이고 (위에서) 아래로는 곧 토산(土山)이며 산세는 험하고 동학(洞壑)은 심수(深邃)하다.

樹木連抱參天而蔽日者不知其幾許積年空棄之地

人跡不到故藤葛磐結朽草木添阜排擠錯絶卒非人所可通逕小小澗谷不可窮探所謂樹木盡

是冬栢紫檀側栢黃薛金木嚴木槐木楡木楮椒楓桂樹栢之類而其中冬紫檀最多松木直木榛木橡等木疑(자로 판독)終無一株

※ 현재의 관음도 또는 죽도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岸과 로 기록.

(중략)

東南崖岸漂散最多竹田東南麓三處最多

而每處可落皮牟三十餘石

且兩田斫竹尤多其傍斫置數千竿

而或有陳枯者或有未幹者

東南間從谷中向竹田十五里許有小路處此必取竹者徃來逕

(중략)
○ 1711년,『울릉도도형(鬱陵島圖形)』

Cf. 『울릉도도형』 부기(附記)

辛卯五月十四日
(1711년) 신묘 5월 14일

自倭舡倉移舟待風所拙書一句以標
왜선창에서 대풍소로 배를 옮기고 표지(標識)를 하기위해 일구(一句)를 졸서(拙書)했다.

日後刻木立於卯方岩上
며칠후에는 (일구를) 나무에 새겨 (울릉도의) 묘방에 있는 암(岩) 위에 세웠다.

(중략)

Cf. 「울릉도 도동리 신묘명 각석문」 中

辛卯五月初九日到泊于倭舡倉
(1711년) 신묘 5월 초 9일 왜선창에 도착해 정박하였다.

(중략)

朴錫昌拙句刻石于卯方
박석창, (울릉도) 묘방(卯方)에 졸구(拙句)를 각석(刻石)하다.

(중략)

『울릉도도형』 동쪽 확대

※ 지도의 동쪽 우산도에는 ‘海長竹田所謂于山島’라는 부기가 있는데, 박석창이 나무에 새겨 묘방의 암상에 세운 표의 내용으로 추정!/? 묘방(卯方)의 암(岩)은 현재의 독도로 추정!/?

그 의미는 ‘(울릉도의) 죽전(竹田)이 있는 곳에서 바다로 나아가면 이른바 우산도 이다’라는 의미 인 듯!/?
(‘海長’은 ‘바다로 나아가다’로 해석)

죽전(竹田)이라고 표기된 곳 아래에 ‘舡泊所倭舡艙人民可居處’라고 부기하고 있다.

Cf. 『접역전도(鰈域全圖)』(울릉도 확대)
울릉도 동쪽 우도(于島) 표기.

Cf. 『아국총도(我國摠圖)』(울릉도 확대)
울릉도 동쪽 우도(于島) 표기.

Cf. 『울릉도도형(鬱陵島圖形) 1』
대우도(大于島), 소우도(小于島), 후죽암(帿竹巖) 표기.

동쪽 확대
죽전(竹田), 묘방(卯方) 표기

Cf.『울릉도도형(鬱陵島圖形) 2』
대우도(大于島), 소우도(小于島), 후죽암(帿竹巖) 표기.

동쪽 확대
묘방(卯方) 표기

Cf. 1882년, 『울릉도외도(鬱陵島外圖)』인방(寅方), 간방(艮方) 확대
죽도(竹島)는 인방(寅方)에 도항(島項)은 간방(艮方)에 표기

Cf. 1711년,『울릉도도형』인방(寅方), 간방(艮方) 확대
석봉(石峯) 표기

Cf. 『매월당시집(梅月堂詩集)』, 권 12, 유금오록(遊金鰲錄)
망우릉도(望羽陵島)

玄洲蓬島飽曾聞。思欲仙遊謝世氛。

人說羽陵堪避隱。登高試望渺如雲。

海岸有石峯高聳而頂平上有白沙

萬年松纏繞峯腰
石罅。異草敷榮。海棠爛開。亦一佳境也。賞翫久之。因宿其上。

현재의 관음도 또는 죽도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島가 아닌 峯으로 기록.

Cf. 『와유록(臥遊錄)』, 권 9,
鬱陵島(新羅史曰于山國島名鬱陵) 地誌 中

(중략)

嘗遇一僧自稱壬辰之亂俘入日本丙午隨倭船至鬱陵島

島有大山三峰尤峻發島三面皆壁立萬仞

南邊稍開豁然亂山若牙撑列水底
남쪽으로 향하는 해변의 말단에는 큰 어금니와 같은 개활(開豁)한 난산(亂山)이 물밑에서 연이어 솟아 있다(Ex . 五松天).

舟道極險狹難入登岸則白沙平鋪長松列植山開望濶
배를 대기에는 매우 험협(險狹)해 들어가 언덕에 오르는 것은 어려운데, 백사(白沙)가 평평하게 펼쳐져 있고 장송(長松)이 연이어 자라는 산은 평평하고 넓어 보인다.
* 開 : 평평하다 (견)

※ 현재의 관음도 또는 죽도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島가 아닌 山과 으로 기록.

而江水流出緣江行十餘里則篔簹作藪不見天日大君梁柱小不减椽杠

又穿藪行十餘里則有竹林其脩大若篔簹竹林旣窮

而原野夷曠有村居墟落山多珍木藥草倭方伐竹採藥留渠守船鄰船適有同俘七人夜與相語天將曉發船以來日纔晡已到

寧海地面云盖二島去此不甚遠一颿風可至
영해지(寧海地)의 일면에 말하길 무릇 두섬(울릉도와 우산도)은 이곳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한번의 범풍(颿風)으로 가히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于山島勢卑不因海氣極淸朗不登最高頂則不可見
우산도의 형세(形勢)가 왜소하여 해기(海氣)가 매우 청랑(淸朗)한 날에 최고정(最高頂)에 오르지 않으면 가히 볼수 없다고 하였다.

鬱陵稍峻風浪息則尋常可見麋鹿熊獐往往越海出來

朝日纔高三丈則島中黃雀群飛來接竹邊串

[島中竹實特時漂出形如大慱暴海女拾之爲雜佩篔簹及竹亦或漂出一節有數尺者宜箭筒比多有之]

Cf. 『울릉도도형1』인방(寅方), 간방(艮方) 확대

※ 龍巖(농암 ; ‘언덕바위’ 또는 용암 ; ‘용목(龍木)이 자라는 언덕’으로 해독) 표기.
* 龍 : 언덕 (롱), 巖 : 언덕 (암)

Cf. 『울릉도도형2』인방(寅方), 간방(艮方) 확대

※ 龍巖(농암 ; ‘언덕바위’ 또는 용암 ; ‘용목(龍木)이 자라는 언덕’으로 해독) 표기.
* 龍 : 언덕 (롱), 巖 : 언덕 (암)

Cf. 「석주충무명의 대도유도(石州沖無名ノ大島有図)」

북동쪽 확대

* 竹の子嶋 표기.

Cf. 『죽도도설(竹島圖說)』 첨부 지도

07.jpg

인·축수(寅·丑受) 확대

○ 此廻リ十五丁(町)
이곳의 반경(半徑)은 15정(町)
* 마와리(廻リ)는 반경(半徑)으로 해석

15(町)×2×3.14=94.2(町)
둘레는 10.276364Km

※ 현재의 죽도로 추정

Ex. 첨부지도 부기(附記)

嶌之廻リ大榔十六里
(울릉)도의 반경은 대략 16리(里)

16(里)×2×3.14=100.48(里)
둘레는 39.461236Km

○ 此間瀨戶三十間
이 칸(間)은 뢰호(瀨戶)로 30간(間)

※ 현재의 와달리 용굴일대로 추정

○ 谷合川一濱亿六丁
곡합(谷合)과 천(川) 1개, 해안은 억(亿) 6정(町)

※ 현재의 와달리 해안 일대로 추정

此小島高百五十間廻リ四十間斗三ツ共
이 소도(小島)의 높이는 백(百) 50간(間), 반경(半徑)은 40간(間) 두형(斗形)으로 (암벽) 3개가 하나로 합쳐졌다.
* 마와리(廻リ)는 반경(半徑)으로 해석

40(間) ×2×3.14=251.2(間)
둘레는 456.727273M
그런데 현재의 관음도는 장방형(長方形)으로 40(間)은 단축 반경으로 추정, 장축 반경을 약 2배인 80(間)으로 가정하면
80(間) ×2×3.14=502.4(間)
둘레는 913.454545M
두 둘레의 중간치는 685.090909M

현재의 관음도로 추정되며, 울릉도도형의 석봉, 농암/용암의 묘사와 유사.

○ 二丁斗
(폭은) 2정(町)이며, 두형(斗形)

※ 현재의 선창선착장 일대로 추정

切立岩組
원통형의 암석이 뒤얽혀 있는 곳
* 절립(切立) : 원통형(圓筒形)
* 암조(岩組) : 岩が入り組んでいる所

현재의 삼선암으로 추정

○ 濱長亿十丁谷合川二少少ニ平地モアリ
해안의 길이는 억(亿) 10정(町), 곡합(谷合)과 천(川)이 2개에 약간의 평지도 있다.

※ 현재의 나리분지가 있는 추산항 일대로 추정

○ 嶮峨六十間
혐아(嶮峨)는 60간(間)

※ 현재의 송곳산으로 추정

Cf. 1871년, 『죽도잡지(竹島雑誌)』첨부 「죽도지도(竹島之圖)」

북동쪽 확대

* 周十五丁(町)
둘레는 15정(町)

* 一本此島三ツ高十丈廻リ四十間

어떤 책에서는 이섬은 세개로 분리되어 있고 높이는 10장(丈), 반경(半徑)은 40간(間)인 것으로 생각한다.

* 此処大岩組立ナリ
이 곳에는 큰 암조(岩組)가 서있다.

※ 헨따이가나(変体仮名) 참조

Cf. 1877년,「죽도지도(竹嶋之図) 1」축수(丑受) 확대

○ 此廻リ十四五丁(町)
이곳의 반경(半徑)은 14·5정(町)

○ 此瀨戶三拾間
이 뢰호(瀨戶)는 30간(間)

○ 谷合壹ツ川壹ツ濱長リ五六丁(町)
곡합(谷合)이 1개, 천(川)이 1개, 해안의 길이는 5·6정(町)

此小島高百間余廻リ亿四十間
이 소도(小島)의 높이는 백(百) 간(間) 여, 반경(半徑)은 억(亿) 40간(間)

○ 此間弍丁(町)
이 칸은 2정(町)

○ 切落大岩組
절락(切落) 모양의 대암(大岩)이 뒤얽혀 있는 곳
* 절락(切落) : 肉や魚などを切り分ける際にできる、半端で形のそろわない部分(반토막나 서로 분리되어 있는 모양)

○ 濱長リ亿十丁谷合二ツ川弍ツ少少ニ平地有
해안의 길이는 억(亿) 10정(町), 곡합(谷合)이 2개, 천(川)이 2개에 약간의 평지가 있다.

○ 此岩山高百間斗
이 암산(岩山)은 높이가 백 간(間)에 두형(斗形)

Cf. 1881년,『죽도고증 상(竹島考證 上)』

상.jpg

竹島(一二磯竹島二作ル)ハ本邦ト朝鮮国ノ間二在ル孤島ナリ
죽도(죽도 ; 현 울릉도)(혹은 기죽도로 여긴다)는 본방(本邦)과 조선국(朝鮮国)의 사이에 있는 고도(孤島)이다.

周圍十許里山岳嵯嶬(峨)トシテ溯(자로 판독)谷幽絶茂樹密竹ァリ土地肥沃物産多シ(以上竹島考ニ據ル)
주위(周圍) 10리(里) 정도의 차아(嵯嶬)한 산악(山岳)으로서의 삭곡(溯谷)에는 유절(幽絶)하게 무수(茂樹)와 밀죽(密竹)이 있고 토지는 비옥(肥沃)하고 물산(物産)이 많다.(이상은 죽도고(竹島考)에 의거 한다.)

(중략)

山岳嵯嶬トシテ溯谷은 현재의 죽도로 추정되며, 島가 아닌 山岳, 谷으로 기록.

Cf. 1887년, 「한성주보(漢城周報)」제 73호, 7월 25일
東伯狀啓 중

同日江原道觀察使鄭泰好謄報平海郡守兼鬱陵島僉使朴泰遠牒呈内僉使鬱陵島搜討次

(중략)

十六日

轉向長社洞 出往道傍浦則居民不多墾田尠少而雙璧屹立一港深通

至苧浦洞則青苧簇立奇岩削出緣崖

而行入于竹田邱尾則篁林稀踈僅備進獻之數

還爲踰嶺止宿
(죽전구미에서 저포동으로) 돌아와 령(嶺)을 넘어 지숙(止宿)하였다.

十七日
(윤 4월) 17일

入于羅里洞則幅圓廣濶洽爲一舎之地雖多冝畓處亂樹叢林姑未開拓仍出海口錐巖一峰挿入半天

轉至廣巖洞則山開平陸田多土桁
(나리동에서 다시 령을 넘어 저포동으로 돌아와서) 장소를 옮겨 광암동(廣巖洞)에 도착했는데 산은 평평하고 뭍에는 밭이 많고 토대(土臺)는 들보 (모양)이다.
* 開 : 평평하다 (견)

광암동(廣巖洞)은 현재의 죽도로 추정되며, 島가 아닌 巖으로 기록.

又到香木谷則村在巖壁間故僅爲斫取準備進上元數其下臨水窟穴深邃
또한 향목곡(香木谷)에 도착했는데 암벽으로 둘러 쌓인 곳에 있는 벽지(僻地)인 까닭에 진상에 쓰일 으뜸이 되는 (향목) 몇개만을 베어 취할수 있었다. 그 아래 물과 맞닿은 곳은 굴혈(窟穴)인데 심수(深邃)하다.

※ 향목곡(香木谷)은 현재의 관음도로 추정되며, 울릉도 북서쪽의 향목구미(香木龜尾 ; 서면 태하리와 북면 현포리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와는 별개로 『울릉도사적』에 기록된 ‘北邊岸其中冬紫檀最多 …’ 라는 기록의 북변안(北邊岸)과 동일한 장소로 추정.

而可支魚一隊出沒捕得二頭傍有黄土窟故如于掘取
그리고 가지어 한 무리가 출몰하여 두 마리를 포득(捕得)하였고, 그(향목곡) 옆에 황토굴이 있는 까닭에 가서 굴취(掘取)하였다.

※ 황토굴(黄土窟)은 울릉도 태하리의 대·소황토구미(大·小黃土九味)의 황토굴이 아니라 와달리 용굴로, 『울릉도외도』의 간방(艮方)에 표기된 석간동혈(石間東穴)로 추정.

Cf. 『울릉도외도』

석간동혈(石間東穴) 표기.

Cf. 『울릉도검찰일기』 初九日 中
其海邊有石穴色紫海水細滴其名石間朱穴而不是爲石朱也其下有一小浦名曰船板邱尾 …

十八日還到于初泊大黄土浦

(중략)

※ 3개의『울릉도도형』에는 현재의 독도를 묘방(卯方)에 우산도(于山島), 대우도(大于島)와 소우도(小于島)로 표기하고, 현재의 관음도와 죽도는 인방(寅方)과 간방(艮方)에 2개의 석봉(石峯), 2개의 龍巖(농암/용암)으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

Cf. 1711년,『울릉도도형』
진방(辰方) 확대

※ 표시된 섬은 울도에 부속한 섬이 아니라 진방(辰方) 한계에 위치한 오키노시마(隠岐島) 일대로 추정(검증요망)

Cf. 1711년,『울릉도도형』
오방(午方) 확대

※ 표시된 섬은 울도에 부속한 섬이 아니라 오방(午方) 한계에 위치한 이키노시마(壱岐島) 일대로 추정(검증요망)

Cf. 1711년,『울릉도도형』
미방(未方) 확대.

※ 표시된 섬은 울도에 부속한 섬이 아니라 미방(未方) 한계에 위치한 쓰시마(對馬島) 일대로 추정(검증요망)

Ex.『탐라순력도』(한라장촉)
제주도 서귀포 남쪽 남방한계

Part II

○ 1748년, 『영조실록』 권67, 영조 24년 5월 23일 丙午
上御金商門親鞫湖西罪人問李之曙曰 中

(중략)

命下幕更問之曙曰

黃賊尙在屯聚嶺南大島中當一番騷動而來云

卽闕中匿名書中一事所謂大島卽鬱陵島越邊大島

若非與賊同心何以知之

(중략)

○ 1782년, 『내각일력(內閣日曆)』,  27책,  107쪽

壬寅 八月 二十七日 辛卯 晴, 重設四郡試券議曰 中

(중략)

民國俱瘁瘡痍溢目殆若大病未祛元氣

先敗爲今之計莫若小大上下繼支懷保以圖目下之調息而已

今若行大創革大變通之政則不待十年而害先於利病隨而難醫矣

其豈可易議哉

欝陵南澨大島也土壤之饒物産之衆不下於四郡而一棄不復歷屢朝而于今矣
아! 울릉(欝陵) 남서(南澨)의 대도(大島) 또한 토양(土壤)의 요(饒)와 물산(物産)의 중(衆)이 사군(四郡)에 못지 않은 곳으로 한번 소홀히 한것이 누조(屢朝)에 불복력(不復歷)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尺土爲寶南北何間而今之議者齗齗於四郡之設而初不議到於欝陵者可見其不知其二也
척토(尺土)의 남북 몇칸이라도 보배라 할만 한것으로서 지금의 시권(試券)에 관한 의론(議論)은 사군(四郡)의 중설(重設)에 관한 은은(齗齗)이지만 울릉(欝陵)이라는 곳에 이르면 가히 그곳(大島)을 볼수 있는데 그 두가지(土壤之饒와 物産之衆)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이전(以前)부터 의론(議論)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 1786년,『일성록(日省錄)』정조 10년 6월 4일(병자)
原春監司李致中以鬱陵島搜討形止馳聞 中

(중략)

二十九日解纜到苧田洞
(4월)29일 출항하여 저전동에 도착하였다.

四船之人沐浴山祭後看審則自洞口至中峯二十餘里

(중략)

而洞裏石城痕周可數三里宛然猶存

城內有大錐巖小錐巖石礎苧田等處

土地平衍可墾田畓八九石落

cf.『해동여지도』저전동(楮田洞) 표기

cf. 『청구도』저전동(楮田洞) 표기

cf. 『동여도』저전동(楮田洞) 표기

cf. 『울릉도외도』

cf. 『해동지도』(울릉도)

※ 저전동은 현재의 저동이 아니라 현재의 추산항 부근 송곳바위와 나리분지가 있는 곳으로 추정,『울릉도외도』의 북쪽 왜선창(倭船滄)부근으로 추정.

前進可支仇味則山腰有兩石窟其深難測
(저전동에서) 가지구미(可支仇味)로 (배를타고) 앞으로 나아가니 곧, 산허리에 2개의 석굴있었는데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 가지구미는 가지도의 구미로 현재의 죽도로 추정, 동쪽면 해식동굴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 시간적으로나 진행방향상 독도라 할 수 없음

可支魚驚出投水之際砲手齊放捉得二首

五月初一日卯時
5월 초 1일 묘시

轉向南邊倭船滄
(가지구미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해안가의 왜선창(倭船滄)으로 향하였다.

則自洞口至中峯三十餘里皆是殘山

石城石塔石葬等遺址宛然

轉向前面巖壁削列水邊

cf. 『울릉도도형』

cf. 『해동지도』(울릉도)

到長作地竹林處則竹林稀疏
(왜선창에서) 장작지 죽림(竹林)에 도착해 죽림(竹林)이 희소(稀疏)한 곳에 곧바로 머물렀다.

初二日平明
초 2일 수평선이 밝아 올때

看審則有巖屹立水中
(장작지에서) 수중에 바위가 흘립(屹立)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狀如牛角名以帿竹巖
모양은 쇠뿔모양과 같고 이름은 후죽암으로 불린다.

束有防牌島大島爲三里許
대도(大島 ; 대섬)와 떨어져 있는 방패도도 속해 있는데 (대도에서 방패도는) 3리정도가 된다.

(중략)

※ 장작지, 현재의 사동해안에서 수중(水中)쪽이면 동쪽을 의미하는데 동쪽을 바라보며 간심(看審)했을 뿐 간것은 아님, 현재의 사동 해안 앞에는 후죽암으로 불릴만한 바위와 방패도, 대도로 불릴만한 섬은 존재하지 않음. 아주 멀리 있는 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
○ 『홍재전서(弘齋全書)』,  권 50,  책문(策問) 3, 지세(墬勢),  초계문신(抄啓文臣)의 친시(親試), 1789년 王若曰 中

王若曰
왕이 약왈(若曰) 하기를

坤作墬勢。高下有則。知廣輪辨五物。
땅에는 지세(墬勢)가 이루어져 있고 높고 낮음에 이치(理致)가 있으니 광륜(廣輪)을 알고 오물(五物)을 분별해야만 한다.

此地理學所由自也。
이에 지리학이 유자(由自)한 것이다.

(중략)

奈之何挽近以來。人不知地理之爲政本。

關防多疎虞之歎。城池無修飾之效。

畿輔兵閫。廟議之進退靡常。

江都統禦。衆論之臧否不一。

鬱陵損竹。久棄爲空島。
울릉도와 손방(損方)의 죽도(竹島)는 오랫동안 소홀히 하여 공도(空島)가 되었다.

* 손(損)은 손방(損方)으로 해석 : 진방(辰方)과 사방(巳方)의 사이

(중략)
○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권 8, 대책(對策), 지리책(地理策)

1789년 臣伏惟 中

(중략)

臣伏惟

鬱陵損竹之棄爲空島非計也。
울릉도와 손방(損方)의 죽도(竹島) 제도(諸島)를 소홀히하여 공도(空島)로 두는 것은 좋은 방책(方策)이 아닙니다.

* 損竹之는 손방(損方)의 죽도(竹島) 제도(諸島)로 해석.
之는 대명사로 ‘그것들’이라는 의미로 직역하면 ‘죽도의 것들’로 ‘죽도와 죽도에 부속되어 있는 것들’로 해독(검증요망)

Ex. 1882년, 『울릉도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  (계초본)』
6월 5일, 복명(復命) 中
… 則于山称鬱陵即如耽羅称済州是白如乎 … 라는 문장에서 ‘于山之’나 ‘耽羅之’ 또한 ‘우산에 부속되어 있는 것들’, ‘탐라에 부속되어 있는 것들’로 해독(검증요망)

鬱陵者。于山古國。

新羅智證王所伐取也。

竹箭貂鼠之皮。奇木珍餌之產。多於㴉州。

且其水路近接日本。如有黠倭潛來而先據之。國之大憂也。

今宜募民入居。設爲鎭堡。不可緩也。

或曰當時空棄。出於約信。不可渝也。

此言過於愿慤。非所以謀國也。

損竹小島。且無隱憂。雖舍之无害也。
손방(損方)의 죽도(竹島)는 작은 섬이지만 또한 은우(隱憂)함이 없어야만 합니다. 단지 내버려둔 동안 무해(无害)했을 뿐입니다.

* 손(損)은 손방(損方)으로 해석 : 진방(辰方)과 사방(巳方)의 사이

(중략)
○ 1794년, 『일성록(日省錄)』정조 18년 6월 3일(무오)
江原監司沈晉賢以鬱陵島搜討後圖形馳啓 中

(중략)

二十五日

到長作地浦
(통구미진에서) 장작지포에 도착했다.

(중략)

前有三島在北曰防牌島在中曰竹島在東曰甕島
(장작지포에서 배를 타고) 나아가면 섬이 세개가 있는데 북쪽에 있는 것은 방패도로, 중간에 있는 것은 죽도로, 동쪽에 있는 것은 옹도로 일컬어 진다.

※ 장작지포, 현재의 사동 해안 앞에는 방패도, 죽도, 옹도로 불릴만한 섬은 존재하지 않음. ‘前’자의 의미는 ‘앞’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본의로써 ‘배를 타고 나아가다’로 해석.

Cf. 1871년, 『죽도잡지(竹島雑誌)』첨부 「죽도지도(竹島之圖)」

남동쪽 확대

* 此処大坂浦ト云ヨシ
이곳은 대판포(大坂浦)라고 하는 곳이다.

* 一本此処
어떤 책에는 이곳에 섬이 있다고 한다.

※ 헨따이가나(変体仮名) 참조

三島相距不過百餘步
세개의 섬은 서로서로 불과 백여보 떨어져 있다.

難以登覽仍爲止宿
나아가 둘러보기 어려울거 같아 (장작지포에서) 지숙(止宿)하였다.

二十六日

轉向可支島
(장작지포에서) 가지도로 방향을 바꾸어 향하였다.

四五箇可支魚驚駭躍出形若水牛砲手齊放捉得二首

而丘尾津山形最爲奇異入谷數里則昔日人家遺址宛然尙存
그리고 구미진(丘尾津) 산허리의 형세가 가장 기이하였는데 입곡(入谷)이 수리(數里)는 되는 듯 하였다 …

左右山谷甚爲幽深難於登涉仍爲下來遍看竹巖帿布巖孔巖錐山等諸處
좌우의 산곡(山谷)은 매우 유심(幽深)하였고 오르는 것이 어려워 오르다 말고 내려와 죽암, 후포암, 공암, 추산 등 모든 곳을 편간(遍看)하였다.

※ 입곡, 좌우산곡은 현재의 죽도 동쪽면 해식동굴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가지도에 오르다 말고 둘러본 곳은 현재의 추산항 일대로 추정. 시간적으로나 방향진행상 가지도는 독도가 아님.

(중략)

cf. 『울릉도도형』

cf. 『해동지도』(울릉도)

cf. 『울릉도외도』

○ 1794년『정조실록(正祖實錄)』정조 18년 6월 3일(무오)
江原道觀察使沈晋賢狀啓言 中

(중략)

二十五日

到長作地浦

(중략)

前有三島在北曰防牌島在中曰竹島在東曰瓮島

三島相距不過百餘步

難以登覽仍爲止宿

二十六日

轉向可支島

四五箇可支魚驚駭躍出形若水牛砲手齊放捉得二首

而丘尾津山形最爲奇異入谷數里則昔日人家遺址宛然尙存

左右山谷甚爲幽深難於登陟仍遍看竹巖帿布巖孔巖錐山等諸處

(중략)

※ 『일성록』의 기록과 동일하지만 『일성록』의 옹도(甕島)를 옹도(瓮島)로 기록하고 있음.

Part III

○ 1855년, 「중정만국전도(重訂万国全図)」 울릉도, 독도 확대

* アルゴナウト島卽竹島

* ダゲレト島卽松島
○ 1863년, 「JAPAN NIPON, KIUSIU, SIKOK AND PART OF KOREA(日本・朝鮮図)」울릉도, 독도 확대

* Matu sima(Dagelet I.) : 현재의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가 아니라 마쯔시마(松島)로 표기

* Boussole R.k : 현재의 죽도

* Liancourt R.k : 현재의 독도
○ 1880년, 「(일본 수로보고) 제 24호」 첨부 약화(略畵)

2524365033_065de12a55_o

* 松島一名鬱陵島

* Boussole R.k 竹嶼 : 현재의 죽도를 죽서(竹嶼)로 표기.
○ 1898년, 「아세아동부여지도(亜細亜東部輿地図)」울릉도, 독도 확대, 출처

* 松島(鬱陵) : 송도(울릉) 표기.

* 竹島 : 죽도 표기.
○ 1881년, 『죽도판도소속고(竹島版圖所屬考)』(7)

(중략)

於是乎 竹島松島一島二名又二島 各別ナルノ說アリ紛紜決 セス
이제야, 竹島(죽도 ; 현 울릉도)와 松島(송도; 현 독도)가 하나의 섬으로 두개의 명칭인지 또는 두 섬이 각각 별개인지의 설(說)이 있어 분별(分別)하는데 분운(紛紜)하였다.

仍ヲ松島巡島ノ議起ル然ルニ其事中止 遂ニ行ハレス(松島關係書類 浦潮斯德公信ニ據ル)。
이에, 松島(송도; 현 독도) 순시(巡視)의 의론이 일어났으나 그 일을 중지하고 수행하지 않았다. (松島關係書類浦湖斯德公信에 의거함)

(중략)

又松島ハ古代韓人稱スル處ノ鬱陵島ニシテ他ニ竹島ト稱スル者アルモ蕞爾タル小島ニ過キサルヲ知リ事情愈明了ナリ。
또 松島(송도; 현 독도)는 고대 대한제국인이 칭하는 울릉도(鬱陵島)의 일처(一處)로서 이외에 竹島(현 죽도)로 칭(稱)하는 곳이 있지만, 촬미(蕞爾)한 小島(소도)에 불과한 곳임을 알게 되는 사정은 더욱 명료(明了)해졌다.

由此觀之ハ今日ノ松島ハ卽チ元祿十二年稱スル所ノ竹島ニシテ古來我版圖外ノ地タルヤ知ルヘシ。

(중략)
○ 1882년,『고종실록(高宗實錄)』 고종 19년 4월 7일(임술)
召見檢察使李奎遠辭陛也 中

敎曰

鬱陵島近有他國人物之無常往來任自占便之弊云矣

松竹島芋山島在於鬱陵島之傍而其相距遠近何如亦月何物與否未能詳知
또 송죽도와 우산도는 울릉도의 곁에 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무슨 물건이 나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今番爾行特爲擇差者各別檢察且將設邑爲計必以圖形與別單詳細錄達也

奎遠曰
규원왈

芋山島卽鬱陵島而芋山古之國都名也
우산도는 곧 울릉도 뿐만 아니라 우산고지국(芋山古之國)의 도명(都名)입니다.

松竹島卽一小島而與鬱陵島相距爲三數十里
송죽도(松竹島)는 곧 작은 섬으로 울릉도와 3리(三里) 또는 수십리(數十里) 떨어져 있는 섬입니다.

其所産卽檀香與簡竹云矣
그 곳에서는 단향과 간죽이 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敎曰
교왈

或稱芋山島或稱松竹島皆輿地勝覽所載也
우산도로 칭하는 곳은 어떠한지? 송죽도로 칭하는 곳은 어떠한지? 모두 (그 형편이) 여지승람에 소재되어 있는 곳 인지?

而又稱松島竹島與芋山島爲三島統稱鬱陵島矣
그리고 또 송도로 칭하는 죽도는 우산도로 여겨지는데, 세개의 섬(방패도, 죽도, 옹도로 추정)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울릉도로  통칭할수 있는 곳인지?

* ‘與’자는 동사로 ‘동의하다’, ‘허락하다’, ‘허용하다’의 의미로 해석

※ ‘稱松島竹島’는 정황상(情況上) 현재의 울릉도로 볼 수 있지만 문맥과 맞지 않음.
울릉도와 우산도는 세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인데 울릉도로 통칭할수 있는 곳인지?(X)

※ ‘稱松島竹島’를 별개로 볼수도 있지만 앞문장에 ‘松竹島’에 관해 기술(記述)하고 있어 문맥과 맞지 않음.
송도(현재의 울릉도), 죽도(현재의 죽도)와 우산도는 세개의 섬으로 울릉도로 통칭할수 있는지?(X)

其形便一體檢察
그 형편(땅의 생긴 現象)을 모두 검찰하라.

鬱陵島本以三陟營將越松萬戶輪回搜檢者而擧皆未免疎忽
울릉도는 본래 삼척영장과 월송만호가 차례로 돌아가며 수검(搜檢)하던 곳이지만 대부분 소홀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只以外面探來故致有此弊爾則必詳細察得也
단지 (울릉도) 외면만을 살피고 돌아온 까닭에 이러한 폐단이 있어 온 것이니 그대는 모범이 되어 반드시 상세하게 살펴 분명히 하라.

奎遠曰
규원왈

謹當深入檢察矣
자성하며 (울릉도) 깊은곳 까지 들어가 검찰할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或稱松島竹島在於鬱陵島之東
혹 (일본인들이) 송도(松島)로 칭하는 죽도(竹島)는 울릉도의 동쪽에 있습니다.

而此非松竹島以外別有松島竹島也
이에 (죽도는) 송죽도(松竹島)는 아니고 이외에 따로 있는 송도, (즉) 죽도(竹島)입니다.

Cf. 1696년 ‘죽도지회도’
독도를 송도(松島)로 표기

Cf. 1877년 ‘기죽도약도’
독도를 송도(松島)로 표기

敎曰
교왈

或有所得聞於曾往搜檢人之說耶
혹 이전에 다녀온 수검인(搜檢人)의 설명을 들어 본적이 있느냐?

奎遠曰
규원왈

曾往搜檢之人未得逢著而轉聞其梗槪矣
이전에 다녀온 수검인(搜檢人)을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그 경개(梗槪)를 전문(轉聞)한 것을 보충하였을 뿐입니다.
○ 1882년, 『울릉도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초 4일 中

원문참조(오탈자 확인 요망)

初四日

(중략)

攀登于東便上上峯峯名聖人不知幾萬層幾萬丈也

登第一層四望海中都無一点島嶼之見形矣

(중략)
○ 1882년, 『울릉도검찰일기』초 9일 中

원문참조(오탈자 확인 요망)

(중략)

其下有一小浦名曰船板邱尾

(중략)

南便洋中有二小島

形如臥牛而一爲右旋一爲左旋
各其一便則稚竹有叢一便則卉雑腐生高
爲数百丈廣爲数●之地長爲五六百歩

人云島項亦云竹島也

(중략)
○ 1882년, 『울릉도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 (계초본)』
초 4일 中

(중략)

登東邊最高峯曰聖人峯四面聘眺海天茫●無一点島嶼

(중략)
○ 1882년, 『울릉도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 (계초본)』
초 9일 中

(중략)

東南洋中有二小島
(선판구미의) 동쪽과 남쪽 바다에는 두개의 작은 섬이있다

(중략)

一云島項一云竹島
하나는 도항(현재의 관음도)으로, 하나는 (송)죽도(현재의 죽도)로 말한다

(중략)
○ 1882년, 『울릉도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 (계초본)』
6월 5일, 복명(復命) 中

(중략)

(자로 판독 ; 원문참조 탈자)松竹于山等島僑寓諸人皆以傍近小島当之然既無圖籍之可據又無郷導之指的
(일본인들이) 송도로 칭하는 죽도와 우산도 등의 섬은 교우(僑寓)하는 자들 모두가 방근(傍近)하는 작은 섬이라 도적(圖籍)의 가거(可據) 또는 향도(郷導)의 지적(指的)은 당연 이전부터 없었던것 같습니다.

晴明之日登高遠眺則千里可窮而更無一拳石一撮土
청명한 날에 높은 곳(東邊最高峯曰聖人峯)에 올라 멀리 바라보았지만 천리가 가궁(可窮)하였고 일권석 일촬토 하나 갱무(更無)하였습니다.

則于山之称鬱陵即如耽羅之称済州是白如乎
하지만 곧, 우산국에 속해 있는 것들(于山之)을 울릉(에 속해있는 것)으로 칭하는 것은 탐라국에 속해 있는 것들(耽羅之)을 제주(에 속해 있는 것으)로 칭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사룁니다.

(중략)

※ 이규원은 동쪽 최고봉인 성인봉에 올라 称松竹于山等島를 확인하려 하였지만 확인 못 함. 그러나 선판구미의 동쪽과 남쪽에 있는 현재의 관음도를 島項으로 현재의 죽도를 (松)竹島로 확인. 곧, (松)竹島와 称松竹于山等島의 竹島는 동일한 섬이 아님.

또한『고종실록』의 稱松島竹島與芋山島라는 질문에 이규원은 或稱松島竹島在於鬱陵島之東而此非松竹島以外別有松島竹島也라고 답하고 있어 (松)竹島와 稱松島竹島與芋山島의 竹島를 분명히 구별하고 있음.
○ 1899년 ,「황성신문(皇城新聞)」별보 9월 23일자
鬱陵島事況 中

蔚珍之東海에一島가有하니曰鬱陵이라
울진의 동쪽 바다에는 섬 하나가 있는데 울릉이라 한다.

其附屬한小六島中에最著者는于山島竹島ㅣ 니大韓地誌에曰鬱陵島는古于山國이라
그 부속한 소륙도 중에 최저(最著)한 곳은 우산도죽도이니 대한지지에 울릉도는 예전의 우산국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 ‘最著’라고 기술(記述)하고 있어 ‘于山島竹島’는 두개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장소로 于山島와 竹島는 동격으로 추정.
곧 우산도는 문헌상으로서의 독도, 죽도는 일반화된 명칭으로서의 독도를 지칭한 것으로 추정.

(중략)

古에牛形無角한水獸가有하니名曰可之오海鳥가有하니名曰霍鳥ㅣ 러라
옛날에 우형무각(牛形無角)한 수수(水獸)가 있었던 곳은 가지라 명하여 불렀고, 해조(海鳥)가 있었던 곳은 곽조(霍鳥)라 명하여 불렀다 한다.

(중략)
○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고종 37년 10월 25일
제 2조

郡廳位寘는台霞洞으로定하고區域은鬱陵全島와竹島石島를管轄할事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와 석도를 관할할 사(事)
○ 1904년, 『조선개화사(朝鮮開化史)』지리편, 제 4장
울릉도 중

『조선개화사』첨부지도

(중략)

大小六島アリ其ノ中著名ナルヲ于山島(日本人ハ松島ト名ク)竹島ト云フ
크고 작은 6개의 섬이 있으며, 그 중 저명(著名)한 것을 우산도(일본인은 송도로 名한다)죽도라고 한다.

(중략)

Cf.『대동지지(大東地志)』江原道(號關東) 蔚珍 中

(중략)

島之南有四五小島島中皆石壁
(울릉)도의 남쪽에는 네 다섯개의 작은 섬이 있는데 섬의 중앙은 모두 석(암)벽이다.

(중략)
Cf. 『해동지도(海東地圖)』울릉도 남쪽 5개도(島)
船泊可居 부기(附記)

Cf.『지승(地乘)』 울릉도 남쪽 5개도(島)
舡泊可居 부기(附記)

Cf. 『강원도지도(江原道地圖)』울릉도 남쪽 3개도(島)

Cf. 『대동방여전도(大東方輿全圖)』울릉도 남쪽 3개도(島)

Cf.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울릉도 남쪽 3개도(島)

※ 울릉도의 남쪽 연안에는 실제적으로 섬이라고 불릴만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울릉도의 남방한계에 위치한 섬을 표시한 것으로  쓰시마(對馬島), 이키노시마(壱岐島), 오키노시마(隠岐島) 일대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검증요망).

Ex. 『탐라순력도』(한라장촉)
제주도 서귀포 남쪽 남방한계

※ 울릉도의 남쪽에 표시된 5개 혹은 3개의 섬은 울릉도의 남방한계에 위치한 섬을 표시한 것이고 울릉, 곧 우산국과 관련된 섬은 울릉도, 현재의 관음도, 현재의 죽도, 우산도 총 4개의 섬이 된다.

그런데 「황성신문」과 『조선개화사』에는 울릉, 곧 우산국(于山國)에 부속한 섬은 6개로 기술하고 있는데 …

여기에 울릉도 수토기 중 장작지포의 수중에 있는 방패도, 죽도, 옹도를 합치면 총 7개의 섬이 된다.

『고종실록』, 芋山島卽鬱陵島而芋山古之國都名也라는 기록의 ‘都名’ , 『울릉도검찰일기』, 登第一層四望海中都無一点島嶼之見形矣라는 기록의 ‘海中都’ 라는 문구에 ‘都’자를 쓰고 있는데 그 의미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
○ 1906년,「황성신문(皇城新聞)」 7월 13일자
鬱島郡의配置顛末 中

(중략)

答函되

(중략)

郡廳은台霞洞에在하고該郡所管島竹島石島오
(울도군의) 군청은 태하동에 위치하고 그 군(郡)이 소관(所管)하는 섬은 죽도(竹島)와 석도(石島)이고

東西가六十里오南北이四十里니
(울릉전도의 구역은) 동서(東西)가 60리(里)이고 남북(南北)이 40리(里)이니

合二百餘里라고하였다더라
(죽도와 석도의 구역은) 200여리(里)를 합(合)한 것이라고 하였다 더라.

※ 기사의 내용은『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 2조의 항목을 示明(시명 ; 一般에 널리 알리도록 仔細히 布告함)하기 위해 세부사항을 기고한 기사로

제 2조의 첫번째 울도군의 군청의 위치,
제 2조의 두번째 울릉전도(鬱陵全島)의 구역,
제 2조의 세번째 죽도(竹島)와 석도(石島)의 구역

을 상세화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곧 죽도와 석도는 하나의 관할 구역으로서 울릉도에서 200여리 떨어진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죽도와 석도는 … ?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