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방록

Biyangbangnok(飛揚放鹿)

* 그림 세부

비양방록

1. 造乎勿(조호물) : 현재의 한경면 조수리 일대

2. 堂旨(당지) : 현재의 저지오름, 『탐라순력도』 (한라장촉)에 ‘당지(堂旨)’, 『탐라지도병서』와 『제주삼읍도총지도』, 『제주삼읍전도』, 『제주군읍지』의 「제주지도」에는 ‘저지악(楮旨岳)’, 『조선지지자료』에 ‘저지봉(楮旨峰)’으로 표기

3. 黑岳(흑악) : 현재의 금오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흑악(黑岳)’, 『탐라지』 (제주)에도 ‘흑악(黑岳)’이라 표기했는데, “제주성 서쪽 50리에 있다. 산봉우리가 평평하고 넓으며 좌우에 골짜기가 있다.”라고 했다. 『탐라순력도』 (한라장촉), 『탐라지도병서』, 『제주삼읍도총지도』에 ‘흑악(黑岳)’으로 기재했다. 『제주군읍지』 「제주지도」와 『조선지형도』에 ‘금악(今岳)’, 『조선지지자료』에 ‘검악(黔岳)’이라 했다. ‘금오름’의 ‘금’은 신성한 의미를 지닌 고대어 ‘감 · 검’에 대응하는 것으로 ‘금오름’은 신성한 오름의 의미를 지닌다는 해석이 있다.

4. 牧三所(자의 異體字)場(목삼소장) …

5. 丹水岳(단수악) …

6. 鉢山(발산) : 현재의 큰바리메, 『탐라지』 (제주), 『탐라순력도』 (한라장촉), 『탐라지도병서』, 『제주삼읍도총지도』, 『제주삼읍전도』에 ‘발산(鉢山)’이라 표기했다. 『제주군읍지』의 「제주지도」에는 ‘발봉(鉢峯)’, 『조선지형도』에는 ‘발이악(發伊岳)’이라 기재했다. 정상 분화구의 모습이 바리때와 같아서 ‘바리메’라 한 것인데,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7. 水流川(수류천) …

8. 晩早望(만조망) …

9. 皮文(피문) : 현재의 서귀포시 대포동 일대 ; ‘갓골’이라는 마을이 있었음.

10. 明月(명월) …

11. 牛屯(우둔) …

12. 序貴抹(서귀말로 판독, 검증요망) …

13. 道內山(도내산) : 현재의 어도오름, 『탐라순력도』 (한라장촉)에는 ‘도내산(道內山)’으로 표기. 이곳에 봉수가 있어서 『탐라도』에 ‘도내망(道內望)’, 『탐라지도병서』와 『제주삼읍전도』에 ‘도내봉(道內烽)’, 『제주삼읍도총지도』에 ‘도내산봉(道內山烽)’, 『제주군읍지』의 「제주지도」에 ‘어도봉(於道烽)’으로 표기했다. 『조선지지자료』와 『조선지형도』에는 ‘어도악(於道岳)’으로 표기. ‘도노미’는 한자로 ‘도내산(道內山)’이라 했는데 오라동의 정실 마을의 ‘도노미’와 구별하기 위해 ‘어(於)’자를 덧붙여 ‘어도오름’이라 한 것이다.

14. 大林(대림) : 한림의 옛 이름은 ‘한술’ 또는 ‘한수풀’이다. 한술의 ‘한’은 ‘큰’의 뜻을 가진 고유어이고 ‘술’은 수풀 또는 덤불의 뜻을 가진 제주도 방언으로, 한자 ‘대림(大林)’으로 표기.

15. 立石(입석) …

16. 道內望(도내망) …

17. 亭子川(정자천) …

18. 盃令浦(배령포) : 『남사록』에서는 이곳을 배령포(杯令浦)라고 하였으며, 병선도 감출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제주삼현도」에서는 배령촌 앞에 배령포가 있다고 하였다. 한림읍 금릉리의 옛 이름이 베렝이이다. 즉, 배령포는 베렝이라는 마을에 있는 포구라는 말이다.

19. 狹才浦 (협재포) …

20. 獨浦(독포) :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돌캐·독개 또는 독포·옹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옹포리가 되었으며, 1956년 7월 8일 한림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2007년 7월 1일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이 되었다.

21. 潛水浦(잠수포) : 잠수포는 지금의 한림읍 수원리에 있는 물캐를 두고 이른 말이며,「제주삼현도」에 나와 있는 잠수촌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22. 牛池浦(우지포) : 지금의 한림읍 수원리의 외딴 자연마을인 용운동 해변에 있는 안개를 두고 이른 말이며, 당시 우지(牛池)라는 지형지물의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23. 敀德浦(귀덕포) : 복덕포라는 말이며 지금의 한림읍 귀덕1리에 있는 복덕개를 두고 이른 말이다.

24. 郭岳(곽악) : 현재의 과오름 ; 『신증동국여지승람』, 『남사록』, 『탐라지』 (제주)에 ‘곽지악(郭支岳)’, 『탐라순력도』(한라장촉), 『해동지도』 (제주삼현), 『1872년지방지도』 (제주) 에는 ‘곽악(郭岳)’, 『조선지지자료』에는 ‘과봉(窠峰)’, 『조선지형도』에는 ‘곽악(郭岳)’으로 표기

25. 夫面(부면) : 현재의 어음리 일대 ; 옛 이름은 부멘이다.

26. 於音非(어음비) …

27. 黑岳(흑악) : 현재의 금오름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흑악(黑岳)’, 『탐라지』(제주)에도 ‘흑악(黑岳)’이라 표기했는데, “제주성 서쪽 50리에 있다. 산봉우리가 평평하고 넓으며 좌우에 골짜기가 있다.”라고 했다. 『탐라순력도』(한라장촉), 『탐라지도병서』, 『제주삼읍도총지도』에 ‘흑악(黑岳)’으로 기재했다. 『제주군읍지』 「제주지도」와 『조선지형도』에 ‘금악(今岳)’, 『조선지지자료』에 ‘검악(黔岳)’이라 했다. ‘금오름’의 ‘금’은 신성한 의미를 지닌 고대어 ‘감 · 검’에 대응하는 것으로 ‘금오름’은 신성한 오름의 의미를 지닌다는 해석이 있다.

28. 今(자의 異體字)勿德(금물덕) : 현재 애월읍 금덕리 일대.

29. 流水岩(유수암) : 현재의 애월읍 유수암리 일대 ; 옛 이름은 흐리믈과 검은데기인데, 흐리믈은 우물, 검은데기는 바위언덕을 의미

30. 今(자의 異體字)勿德岳(금물덕악) : 현재의 검데기오름, 오름 밑에 거문덕 마을이 있어서 거문덕오름이라고도 한다.

31. 涯月(애월) …

32. 高內望(고내망) …

33. 納邑(납읍) : 현재의 애월읍 납읍리 일대 ; 옛 이름은 과납 또는 납이다. 과납이라는 이름은 문서상 이외에는 거의 통용되는 이름으로, 과오름 남쪽이라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납읍(納邑)은 1675년(숙종 1)에 자연 지세가 여러 마을이 모여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읍과 같고, 납(納)자는 입주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34. 加樂(가락) : 현재의 애월읍 하가리 일대 ; 하가리의 옛 이름은 알더럭이다. 가락은 더럭의 한자 차용 표기인데 가(加)는 더의 훈차 표기, 락(樂)은 럭의 음차 표기이다.

35. 長田(장전) : 현재의 애월읍 장전리 ; 옛 이름은 진밧 또는 장밧이다. 긴 밭이라는 뜻으로 장전(長田)은 한자 차용 표기

36. 土城(토성) : 현재의 항파두리 토성(土城) 유적

37. 極落岳(극락악) : 현재의 극락오름

38. 有信洞(유신동) : 현재의 애월읍 광령2리 일대 ; 옛 이름인 이신굴의 한자 차용 표기

39. 水山望(수산망) …

40. 水山(수산) : 현재의 애월읍 수산리

41. 水淨(수정) …

42. 古城(고성) : 현재의 애월읍 고성리 일대 ;  옛 이름은 항바두리 또는 옛성을이다. 항의 가장자리와 같이 항바두리 토성이 타원형으로 쌓아져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으로 추정. 고성(古城)은 항바두리 옛성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

45. 郭支浦 (곽지포) : 지금의 애월읍 곽지리와 금성리에 있는 정짓내 하류에 있는 개맛을 두고 이른 말로, 곽지포는 그 당시「제주삼현도」에 있는 곽지촌(郭支村) 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46. 涯月浦(애월포) …

47. 高內浦(고내포) …

48. 四荘浦(사장포) …

49. 君郞浦(군랑포) …

50. 藻腐浦(조부포) …

51. 伊生里(이생리로 판독, 검증요망) …

52. 海安(해안) : 현재의 노형동 일대 ; 조선 초기부터 이싕이 일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이생촌이라 하고, 해안 일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해안촌라 하였다.

53. 大川(대천) : 현재의 한천 ; 『탐라지』, 『조선강역총도』, 『해동지도』 (제주삼현), 『제주삼읍전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도에서 ‘대천(大川)’이라 표기했다.

54. 老兄(노형) : 현재의 노형동(老衡洞) ;  『제주읍지』에는 ‘노형리(老衡里)’로 표기되었는데, 『호구총수』에는 ‘노형리(老兄里)’, 『대동지지』에는 ‘노형촌(老衡村)’으로 기재되어 있다. 『탐라도』(17세기 후반), 『탐라지도병서』, 『제주삼읍도총지도』에는 ‘노형촌(老兄村)’, 『대동여지도』에는 ‘노형촌(老衡村)’으로 되어 있다. 노형(老衡)은 노형(櫓形)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노형(櫓形)은 지형이 큰 못에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형태여서 붙여졌다 한다.

55. 坪代(평대로 판독, 검증요망) …

56. 道頭望(도두망) …

57. 吾朩美(아빈미로 판독, 검증요망) …

58. 多好(다호) …

59. 翠屛潭(취병담) …

60. 都近川浦(도근천포) …

61. 可沙浦(가사포) …

62. 道頭浦(도두포) …

63. 泥浦(니포) …

64. 修近浦(수근포) …

65. 龍頭(용두) : 현재의 용두암(龍頭岩) ; 『탐라순력도』 (한라장촉), 『해동지도』 (제주삼현), 『대동방여전도』 등에도 ‘용두(龍頭)’라고 표기. 본래 ‘용두’라고 표기되던 것이 후대에 바위 ‘암(巖)’자를 덧붙여 용두암이라 했다.

66. 大獨浦(대독포) :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독포(獨浦)’, 『남사록』에는 ‘대독포(大獨浦)’, 이원진의 『탐라지』에는 ‘대옹포(大瓮浦)’, 『호구총수』에는 ‘대독포리(大獨浦里)’로 표기했다. 『제주읍지』에도 ‘대독포리(大獨浦里)’라고 표기. 『탐라지도병서』, 『제주삼읍도총지도』에는 ‘대독포(大瀆浦)’, 『제주삼읍전도』, 『제주군읍지』의 「제주지도」에는 ‘대독리(大獨里)’, 『조선지형도』에는 ‘용연동(龍淵洞)’으로 표기.

67. 道老里(도노리) : 현재의 도남동 일대

68. 兵門川(병문천) : 현재의 병문천(屛門川) ; 하천 양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는 데서 병문천(屛門川)이라는 이름이 유래했고, 조선 말기에는 조련군의 집합 장소였다는 데서 ‘병문내’라 했던 것이 와전되어 뱅문내가 되었다고 한다.

69. 吾羅好(오라호) : 현재의 오라동(吾羅洞) ; 『제주읍지』에는 ‘오라호리(吾羅好里)’라 표기했고, 『탐라지도병서』, 『해동지도』 (제주삼현도), 『제주삼읍도총지도』 등에는 ‘오라호촌(吾羅好村)’이라 했고, 『제주군읍지』의 「제주지도」, 『조선지형도』 등에는 ‘오라리(吾羅里)’로 표기
 

* 녹문(錄文) 세부

壬午十月十一日生擒(임오시월십일생금)
1702(숙종28)년 시월 십일일 (사슴을) 산채로 잡아

癸未四月二十八日移放(계미사월이십팔일이방)
계미 사월 이십 팔일 (사슴을 비양도로) 옮기어 방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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